문화’ 간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것과 연관시킬 수 있다. 즉 예술은 이제 특정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삶 전체’ 영역, 그리고 특정 예술가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삶과 관계한다. 예술이 문화 일반으로 넓어지면서, 예술과 삶의 관계망 형성에서 제한을 벗어버리면서, 그리고 삶 자체의 무한함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매트릭스의 변천에 따라 역사는 고대, 중세, 근대를 나눴다. 정확하게는 매트릭스가 역사를 나눴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사람들은 문화를 만들었다. 한 사회나 시대의 정치, 예술, 사회구조, 이데올로기 등을 우리는 문화라고 말한
시각이라는 감각 본유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발화와 의사소통으로서의 음성-청각간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시각은 보다 비소통적이고 관조적인 감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현대의 시각중심주의는 대중에게 소통의 의지를 박탈하는 일방통행만을 강요하고 있다.
Ⅲ. 현대의 문화산업과
근대에는 오히려 역사상 개인에 대한 미증유의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근대국민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근대 국민 국가는 개인의 일상을 ‘근대적으로’ 재편하는 데 가장 큰 통제력을 발휘해왔다. 그런데 근대 국가 건설 초기, 개인주의는 이 근대 국가를 옹호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로크(J. Locke)는 이에
3. 근대 소설에 드러난 성 문화
(1) 이광수
이광수의 소설 작품에는 남녀간의 연애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남녀간의 애정을 다루면서도 애정표시에 있어서 보다 더 적극적인 장면은 나타내지 않았다. 심지어는 ‘키스’라는 성적인 용어의 사용마저 주저했다. 개화기의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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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주민 시각으로 바라 본 서양문명
최초로 필리핀을 발견한 스페인인은 1521년의 마젤란으로서 세부 섬을 발견하였으나 호전적인 원주민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만다. 그 후 이 섬은 스페인의 왕 필립2세의 이름을 따 필리핀이라고 불리게
근대 이전까지 유럽은 봉건적 지배단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봉건적인 지배단위들을 통합해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창출하고, 영토 내 거주자들을 ‘국민(nation)’으로 삼아 국민국가를 탄생시켰다.
국민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은 정치적 통합과 문화적 통합을 통해 국민을 창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
근대화’로 일컬어지는 그러한 과격한 사회변동은 아무런 이데올로기가 없이 사회구성원들의 자생적 합의로 추진된 것도 아니다. 근대화 과정은 ‘새마을 운동’, ‘잘살기 운동’, ‘불균형 발전전략’, 성장중심 정책, ‘개발독재’를 추동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문화적 힘을 구축했다. 이러한 이데
문화된 과학적 문화의 관계는 빈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에서는 좁은 대학내의 학문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시각을 갖게 되었고 이는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라는 강력한 두 이론의 형태로 생산되었다.
1.구조주의 : 과학적 인간학의 시각근대 프랑스의 지적문화는 실존주의로 대표되는 인
Ⅰ. 중일근대화(중국과 일본의 근대화)
1. 중국의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
1) 양무운동
제 1-2차 아편전쟁과 태평천국 등 내외적 위기에 직면했던 청조는 '自强', '富强'을 표방하며 강력한 군사력과 각종 근대산업의 육성을 통하여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태평천국을 비롯한 각종 민중반란을